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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 복원 및 현대화

파리 패션위크에 등장한 전통 자수 패션 브랜드 분석

✂️ 1. 패션위크의 시선을 사로잡은 '바느질의 철학' – 전통 자수의 재발견

2024년 파리 패션위크, 루브르 별관의 비공식 런웨이에서 조용히 공개된 하나의 컬렉션이 현지 관계자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한국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한자수(Hanjasu)’가 선보인 의상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소박해 보일 수 있는 이 옷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전통 자수 기법으로 정교하게 수놓아진 봉황, 매화, 운문(雲文) 등 고전 문양이 현대적 실루엣 위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이 브랜드는 단순히 한복의 요소를 재해석한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궁중 자수 기법을 현대 패턴 디자인과 접목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상징적인 작품은 ‘도포 재킷’으로, 이는 전통 도포의 앞깃 모양을 응용한 롱코트형 자켓에 정조대왕의 어의에 사용된 패턴을 응용한 수공 자수가 삽입된 형태였다. 보는 사람마다 “마치 실로 그린 회화 같다”는 감탄이 이어졌고, 일부 패션 평론가는 이를 “텍스타일 미술의 새로운 언어”라고 표현했다.

한자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시연은 인터뷰에서 “자수는 단지 장식이 아니라 기억을 새기는 수단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직물 위의 스토리텔링이죠.”라고 말했다. 이는 자수가 가진 시간성과 의미성이 단순한 수공예 이상의 철학적 의미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패션위크 관계자들 사이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파리 패션위크에 등장한 전통 자수 패션 브랜드 분석

 


🌸 2. 한자수 브랜드의 전략 – 기법의 재해석과 컨셉의 진화

한자수가 선택한 방식은 단순한 ‘전통의 현대화’가 아니라, 전통 기법을 중심에 둔 창작의 리디자인이었다. 일반적인 리메이크 패션이 실루엣과 패턴 위주의 재구성을 중심으로 하는 데 비해, 한자수는 ‘기법’ 자체를 브랜드의 중심 아이덴티티로 삼았다. 이들은 전통 자수 기법 중에서도 특히 삼면 수놓기, 감침질 문양, 수노매기 같은 고난도 작업을 현대 텍스타일에 도입하면서, 시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손맛의 깊이를 보여주고자 했다.

패션위크 당시 공개된 ‘수노매기 스커트’는 기존 자수 치마에서 흔히 보던 평면 자수와는 전혀 다른 입체감을 선사했다. 이 기법은 바늘의 방향, 실의 감도, 직물의 밀도를 고려하여 실루엣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의류를 입은 상태에서조차 문양이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낸다. 이러한 입체적 자수는 파리의 전통 오뜨꾸뛰르 기술과도 연결되며, 일부 프랑스 공방에서는 “잊혀진 자수 예술을 다시 배우고 싶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브랜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각 컬렉션마다 문학적 주제를 설정해 자수에 서사를 부여했다. 2024년 F/W 테마는 “눈 내리는 궁궐, 비단 위의 편지”로, 고궁에서 발견된 한 궁녀의 편지를 영감으로 하여 각 옷에 한 글자씩 수놓아 전체 컬렉션이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도록 구성했다. 이는 단지 ‘옷’이 아닌, 스토리와 감성, 정서적 유산을 입는 경험으로 확장되며, 관객들에게 강한 몰입감을 주었다.


🎯 3. 해외 전문가의 반응 – 전통공예가 런웨이를 점령한 순간

파리 패션위크에서 자수라는 기술이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준 건 드문 일이다. 프랑스 패션 평론지 L'Officiel Mode는 한자수의 등장에 대해 “유럽이 잊고 있던 바느질의 시학이 돌아왔다”고 평가했고, Vogue Italia는 “한국의 텍스타일 공예가 런웨이의 예술로 확장되는 결정적 순간”이라고 평했다. 이처럼 패션계는 단지 새로운 스타일이 아닌, ‘기법의 복원’이 이뤄낸 미학적 충격에 집중했다.

프랑스 공예 디자인 학교 ENSAD(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Arts Décoratifs)의 교수인 클레르 파셰는 “한자수의 의상은 마치 건축 구조처럼 정교하게 짜여 있다. 서양의 자수와 달리 한국 자수는 ‘비움’을 통해 형태를 강조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한자수의 자수가 “소리 없는 음악” 같다고 평하며, 이는 시각 외에 감성적 경험까지 자극하는 특별한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한자수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본의 전통 자수 디자이너인 사토 유미코는 “우리도 자수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가 있지만, 한국 자수는 마치 철학과 회화의 중간쯤에 위치한 독자적인 예술”이라며 한자수와 협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자수’는 단순한 브랜드를 넘어, 한국 전통 공예가 런웨이에서 가진 확장 가능성을 직접 입증한 셈이다.


📈 4. 지속 가능한 유산의 방식 – 브랜드와 생태의 공진화

한자수의 활동은 단순히 자수를 활용한 런웨이용 디자인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자수 기술의 전승자들과의 협업 체계를 통해, 현재 소멸 위기에 놓인 전통 바느질 기술을 브랜드 생태계 내에 통합시키고 있다. 전국의 자수 장인들과 협약을 맺고, 의복별 실별 문양 표준화 매뉴얼을 만들며 생산성과 장인의 미감을 동시에 존중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브랜드는 고용 안정성과 기술 계승을 위해 **‘청년 수놓이 장인 육성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는 단순한 인턴십이 아니라, 전통 자수 기법을 디지털화하고, AI 패턴 설계에 접목시키는 실험까지 병행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패션위크 이후, 한자수는 프랑스 문화부와 함께 *“유럽 내 전통공예 교육 커리큘럼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2025년부터는 파리 국립장식미술관의 ‘자수 아카이브’에 한국 자수 섹션이 추가될 예정이다.

전통 자수는 이제 더 이상 박물관 안에 갇힌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정교함과 정신성은 현대 패션의 감성 코드와 깊이 맞닿아 있다. 파리 패션위크를 통해 ‘한자수’는 한국 공예가 단순히 예쁘고 이국적인 장식물이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도 강한 서사와 경쟁력을 가진 언어임을 증명했다. 이 흐름은 K-컬처의 다음 파장을 예고한다. 바로 ‘공예의 귀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