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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 복원 및 현대화

전통 옷감(삼베, 모시)으로 만든 패션 브랜드 분석

1. 전통 섬유의 재발견 – 삼베와 모시의 현대적 가치

삼베와 모시는 오랜 세월 한국인의 삶 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용돼온 전통 섬유다. 특히 삼베는 삼(대마)에서 얻은 섬유로 통기성과 항균성이 뛰어나 여름철 의복으로 적합하며, 모시는 모시풀을 가늘게 찢어 손으로 짠 얇고 투명한 직물로 고급 한복 소재로 널리 쓰였다. 그러나 이 두 원단은 산업화 이후 대량 생산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점차 자취를 감췄고, 기술을 전승받은 장인들조차 생계 유지의 어려움으로 전통을 잇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전통 섬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천연 소재, 수작업 중심의 친환경 생산, 지역 공동체와의 연계 등은 ESG 시대의 핵심 키워드와도 연결되며, 현대 패션 산업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밀레니얼과 Z세대 소비자들은 이러한 철학과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고유한 스타일을 원하기 때문에, 삼베와 모시는 다시금 패션의 무대에 오르고 있다.

 

 

전통 옷감(삼베, 모시)으로 만든 패션 브랜드 분석

2. 한섬 ‘TIME’의 실험 – 삼베의 모던 엘레강스화

국내 고급 여성복 브랜드로 잘 알려진 ‘TIME’은 2022년 여름, 삼베를 활용한 리넨-헴프 혼합 라인을 선보이며 전통 섬유의 가능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 컬렉션은 삼베의 투박한 촉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급 리넨과 블렌딩한 후, 특수 워싱 처리를 거쳐 착용감을 개선했다. 결과적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질감을 구현해, 도심 속에서도 입을 수 있는 모던한 삼베 패션을 완성했다.

특히 TIME은 ‘전통을 입는다’는 캠페인을 통해 제품의 철학을 소비자에게 명확하게 전달했다. 브랜드는 삼베가 지닌 항균성, 통기성뿐 아니라 장인정신에 기반한 생산 과정을 강조하며, 단지 옷이 아닌 ‘의미 있는 소비’를 유도했다. 이는 단기적 유행을 넘어서, 한국 전통 소재를 기반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한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3. ‘모시옷’의 재해석 – 로컬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움직임

전라남도 함평, 전북 고창 등 모시 명산지에서는 최근 젊은 디자이너들이 중심이 된 지역 기반 패션 브랜드가 등장하고 있다. ‘누비아(nuvia)’, ‘모시에이(MOSHEA)’와 같은 브랜드는 모시의 고급스러움을 현대적 실루엣에 적용하여, 일상복, 리조트웨어, 심지어 오피스룩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이들은 기존 전통 복식의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소재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디지털 프린팅, 레이저 커팅, 오가닉 염색 같은 현대적 기법을 접목해 차별화를 꾀한다. 특히 모시 특유의 반투명성과 가벼움을 살려 계절성 강한 제품군(여름철 셔츠, 원피스 등)으로의 확대가 가능하며, 패션뿐 아니라 커튼, 침구류, 홈웨어 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확장성도 확보하고 있다. 이 같은 시도는 단순한 리브랜딩을 넘어, 지역 섬유 산업과 연계한 지속 가능한 창작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4. 글로벌 시장을 향한 도전 – 한국 전통 섬유의 수출 사례

전통 섬유를 활용한 브랜드 중 일부는 해외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예컨대 ‘베지아(Vezia)’는 삼베와 모시를 활용한 에코백, 스카프, 여름용 재킷 등을 제작해 일본, 프랑스, 호주 등지의 편집숍에 입점한 사례가 있으며, ‘릴리앤서울’은 북유럽 친환경 페어에서 친환경 섬유로 인증을 받으며 해외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은 단순히 소재가 독특해서가 아니라, 해당 소재가 지닌 스토리텔링과 문화성, 철학을 제품에 잘 녹여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 소비자들은 삼베와 모시가 한국의 전통 장례문화나 의례, 계절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설명에 관심을 보였으며, 제품의 포장지와 마케팅 메시지에까지 전통 문양이나 고사성어를 활용한 점이 문화적 깊이를 더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전통 소재가 정체성 있는 브랜드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입증한 중요한 사례다.

 

 

5. 전통 섬유의 미래를 위한 조건 – 산업화와 브랜딩의 균형

삼베와 모시가 현대 패션 시장에서 지속적인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가장 큰 과제는 산업화와 품질 균일성이다.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 섬유는 생산량이 적고 품질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의 패션 브랜드가 활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대해 일부 기업들은 전통 직조 기법을 모사한 반자동 직기를 도입하거나, 장인들과 협력해 수요 기반 생산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마케팅 측면에서는 단순히 “친환경”이나 “전통”이라는 키워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가 그 가치를 체험할 수 있도록 브랜드 스토리텔링, 콘텐츠 기반 홍보, 체험형 매장 등의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결국 삼베와 모시는 전통을 넘어선 새로운 소재 자산이 될 수 있으며, 이들이 ‘다시 입혀지고, 새롭게 소비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의 현대화와 감성의 전환이다.